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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 오로라 공주는 온 나라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다. 오로라가 물레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서 잠들길 바라는 말레피센트를 제외하고. 그 예언이 실현되지 않도록 모든 물레가 불태워진 세상에서, 오로라는 세 요정에게 보호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16번째 생일에 물레를 찾아낸다. 바늘에 찔려 영원한 잠에 빠진 그가 그대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그저 저주에 빠진 잠자는 숲속의 공주밖에 되지 못하는 것일까?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4 새벽비행 부문에서 상영된 [반+짝]은 이러한 삶에 ‘반+짝’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애니메이션은 나선형 조형물에서 이탈한 동그란 형체를 따라가며 시작된다. 음악의 리듬에 맞춰 축복받은 알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보다 먼저 눈을 뜬 건 목덜미 상처에서 튀어나온 아이의 조각이다. 상처가 머금고 있는 액체를 만지며 눈꺼풀을 들어 올린 아이를 맞이하는 건, 그와 달리 상처 하나 없는 삼총사다. 한없이 상냥한 얼굴을 한 그들은 본거지로 아이를 이끈다. 아이의 상처에서 묻어 있던 액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발로 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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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는 아이가 그들의 세상에 완벽하게 적응하길 바란다. 사실 그들과 아이 사이에는 상처 말고도 차이점이 더 있다. 바로 몸과 옷의 색이다. 아이와 조각은 똑같이 하얀 몸을 가지고 있다. 다만 아이는 흰옷, 조각은 검정 옷을 입은 상태일 뿐이다. 반면 삼총사는 조각과 정반대로, 검은 몸에 흰옷을 입고 있다. 놀랍게도 아이가 본거지에 머물자, 그들과 똑같이 검은 몸으로 변화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아이에게 자신들과 같은 볼 터치를 선사하며, 동화(同化)에 쐐기를 박는다. 그럼에도 아이는 조각이 상처에 떨어뜨린 액체로 눈을 뜨고는 나선형 조형물로 향한다. 그리고 그의 출발점인 동그란 물체들을 발견한다. 그 일탈을 놓치지 않은 삼총사는 웃는 낯으로 냉정하게 아이를 내친다. 빈틈없는 세상에 불량품은 필요 없다는 듯.
검게 물든 채 추락하던 아이를 받아낸 건 조각이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액체를 소중히 마시면서 검정에서 잿빛으로 변화시킨 옷을 입은 그는, 조심스레 아이를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러자 아이는 조각의 목덜미 상처 안으로 쏙 들어가게 된다. 이번엔 아이가 그의 조각이었던 존재의 조각이 된 것이다. 하나가 된 그들은 마침내 흰색으로 물들게 된다. 삼총사가 안일하게 희망했다가 너무 간단히 포기한 화합은 상처로 연결된 아이와 조각 사이에서 비로소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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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흰색으로 물든 배경에서 제목이 깜빡하고 나타날 때, ‘+’는 나선형 조형물로 대치된다. 이 모양은 어찌 보면 주인공의 상처와도 비슷하다. 세상에 어우러지기 위해선 무시해야 하는 결점을 ‘반짝’을 상징하는 기호로 표현한 [반+짝]이라는 제목은, 부정적이라고 여겨지던 세상의 균열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더불어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삶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오로라가 진실한 사랑의 입맞춤을 받지 못할지라도, 그는 이미 진실한 세상의 상처를 얻었으니 그 잠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반+짝]은 세상의 위화감을 감지한 상황에서도 기어코 내면의 조화를 탐색해내려는 아이의 여정을 대사 한 줄 없이 황홀한 음악으로 담아낸다. 그 과정을 재치 있게 담아낸 제목은 어리석게만 여겨지는 모험 길을 빛으로 수놓는다.
글 관객심사단 김다예